바위파스타에서 시작한 고급 생면파스타 퀴진의 유행은 몇 년째 사그라들지 않고있다. 한남동 시멘트, 비야톨레도로 이어지며 오히려 다양화되고 더 뜨거워지고 있다. 앞에 언급한 모든 업장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으나 개인 일정으로 이상하게 파스타와는 인연이 닿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 너무너무 신나는 마음으로 다녀왔는데 큰 기대만큼 크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여기가 맞나 싶은 골목을 걷다보면 홀로 불켜진 업장이 보인다. 흡사 카페라고 해도 믿을 분위긴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심플하다. 8석 남짓의 아주 작은 업장.
이렇게 작은 업장은 조리과정을 모두 구경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메뉴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이리저리 조합하면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성이다. 와인리스트가 꽤나 많은 편인데 가격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음식에 두루두루 마실 수 있도록 샴페인으로 주문. 이제 음식 시작.
1. 트리빠
제대로된 트리빠를 처음 먹어봐서 맛의 기준이 없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할 만한 맛이었다. 토마토소스 베이스인데 샴페인에 곁들이기 아주 좋은 간이었다. 소 양가 메인재료로 들어갔고 아주 부드럽게 조리돼서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었다. 위에 치미추리 소스를 얹어주시는데 고수와 파슬리 등 허브 여러종류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틀을 상온 숙성후에 냉장보관하신다고 하는데 꼭 따라해봐야겠다.
2. 포카치아
트리빠와 함께 먹으려고 주문 한 메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게 충분이 맛있는 포카치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부드러운 걸 선호해서 아주 인상깊지는 않았다. 올리브오일을 꽤 좋은 걸 쓰셔서 향긋한 맛이 너무 좋았던 메뉴.
3. 보따르가
먹물이 들어간 스파게티를 쓰고 홍합, 버터베이스 소스가 들어간 파스타. 마지막으로 위에 어란을 올려주시는데 꽤나 듬뿍 갈아주셔서 좋았다. 일단 이날 먹은 파스타 중에 간이 가장 강했다. 직관적으로 버터향, 홍합향이 꽤나 강하게 났고 이 둘이 합쳐져서 엄청나게 강한 감칠맛을 내서 와인이 바로 당기는 맛이었다. 뒤로 가면 갈수록 약간 목에 무언가 남는 맛(덜 익은 메론을 먹으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 같은 느낌..)이 있어서 좀 불편했는데 강렬한 느낌으로만 보면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이즈 큼지막 한 보따르가.
4. 뇨끼
단순한 재료 조합으로 새로운 느낌을 준 요리. 뇨끼 식감이 조금 더 폭신했으면 완벽했을 것 같은데 뭐 이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소스와 재료들의 조화가 굉장히 새롭고 좋았다. 햇양파 수비즈 소스가 메인 소스인데 베샤멜 소스의 한 종류 같았다. 크리미한 소스가 전체 재료들과 뇨끼 맛을 묶어주는 느낌을 주었고 간과 감칠맛은 프로슈토 햄이 담당하고 마지막으로 산뜻한 향과 씁쓸한 맛으로 딱 떨어지는 맛은 레몬 즙에 버무린 루꼴라가 담당했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아주 뛰어났던 요리.
뇨끼는 이렇게 지글지글 구워서 주신다. 프로슈토 햄도 큰 덩어리를 직접 잘라서 주시는데 생고기 잡내도 하나도 없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
5. 아뇰로띠
라비올리의 일종인 파스타인데 이탈리아식 만두 느낌. 근데 이제 버터와 생 트러플을 올렸는데 아주 호사스러운 느낌이었다. 딸레지오 치즈로 속을 채운 아뇰로띠는 진한 맛과 피 역할을 하는 파스타반죽?의 식감이 참 좋았다. 볶은 헤이즐넛과 버터의 향과 맛이 잘 어울려서 좋았고 좀 심심할 수 있는 식감을 헤이즐넛이 채워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렇게 본격 이탈리안을 처음 경험해봐서 그런지 아주 만족스러웠다. 장르가 파스타여서 더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없는 게 아쉽긴 했지만 입문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어디하나 부족함 없이 이런게 이탈리안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체적인 만족도는 아주 높은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외식시장에 아쉬운 점도 많이 느껴지는 식사였다. 한, 중, 일식은 아주 고급식당부터 아주 저렴하고 캐주얼한 곳까지 스팩트럼이 굉장히 넓은데 양식은 아직 저변이 넓지 못해 이정도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주 엉망인 곳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보니 업장 입장에서도 주류 매출이라도 높여야 음식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고.. 소비자의 부담은 가중되는 악순환. 참 많이 먹으러 다니면 다닐 수록 어려우면서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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